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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드 V 페라리' 속 그 짧은 언급을 캐치했다면 눈썰미가 정말 대단한 편이다. 영화 초반, 캐롤 쉘비가 심장 문제로 은퇴하기 직전인 1959년 르망 24시 레이스 중계 영상이나 대사에서 스쳐 가듯 나오는 그 이름이 바로 댄 거니(Dan Gurney) 다.
그는 켄 마일스 못지않게 포드 GT40 프로젝트의 핵심 드라이버였다. 또한 미국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다재다능했던 엔지니어이자 드라이버로 꼽힌다. 영화에 다 담기지 못한 그의 진짜 깊이 있는 에피소드들을 정리했다.
1. 193cm의 거구가 만든 디자인, '거니 버블(Gurney Bubble)'

포드 GT40이라는 이름에서 '40'이 뜻하는 것은 차 높이(전고)가 딱 40인치(약 101.6cm) 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댄 거니는 키가 193cm나 되는 엄청난 장신이었다. 당시 일반적인 레이서들에 비해 덩치가 너무 크다 보니, 헬멧을 쓰고 GT40 운전석에 앉으면 머리가 천장에 걸려서 제대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시트를 아무리 낮춰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결국 포드 엔지니어들은 댄 거니를 차에 태우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썼다. 운전석 위쪽 루프 부위를 볼록하게 위로 늘려버리는 개조를 단행했다.
이 볼록 튀어나온 루프 디자인을 그의 이름을 따서 '거니 버블(Gurney Bubble)' 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댄 거니의 머리 공간을 확보하려는 임시방편이었으나, 이것이 오히려 포드 GT40의 가장 상징적이고 유니크한 시그니처 디자인이 되었다.
2. 시상대의 전설이 된 '샴페인 샤워'의 최초 발명자
오늘날 F1이나 르망, 혹은 다른 스포츠 우승 시상식에서 샴페인을 흔들어 관객과 동료들에게 뿌리는 세레머니는 정석으로 통한다. 이것을 인류 최초로 시작한 사람이 바로 댄 거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6년 르망에서 켄 마일스가 우승을 놓치고 그다음 해인 1967년 르망 24시 내구레이스가 열렸다. 댄 거니는 전설적인 드라이버 A.J. 포이트(A.J. Foyt)와 함께 포드 GT40 Mk IV(마크 4)를 타고 출전해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1967년 댄 거니의 샴페인 세리모니
우승 컵을 받고 포디움에 올라섰을 때, 댄 거니는 너무 기뻤던 나머지 옆에 있던 샴페인 병을 강하게 흔든 뒤 코르크를 마개 삼아 사방에 뿌려댔다. 당시 헨리 포드 2세 회장과 팀 크루들, 기자들 모두가 샴페인을 뒤집어썼다.
그 전까지 시상식에서 샴페인은 그냥 고상하게 축배를 들며 마시는 술이었으나, 거니의 이 즉흥적인 돌발 행동이 전 세계 모터스포츠의 전통인 '샴페인 샤워' 로 굳어지게 되었다.
3. 전 세계 고성능 차 뒷날개에 붙은 '거니 플랩(Gurney Flap)'
댄 거니는 단순히 운전만 잘하는 레이서가 아니라 천재적인 엔지니어링 감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1971년,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레이싱 팀의 경주차 성능을 테스트하다가 리어 윙(뒷날개) 뒤쪽에 아주 간단한 장치를 하나 고안해 냈다.


날개 끝단에 아주 미세하게 수직으로 꺾인 작은 플랩(L자 모양의 금속 조각) 을 덧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어로다이내믹(공기역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거니 플랩(Gurney Flap)' 이다.
공기역학적으로 날개의 각도를 무작정 세우면 차를 아래로 누르는 힘(다운포스)은 강해지지만, 공기 저항(드래그)이 엄청나게 심해져서 직선주로 최고 속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거니 플랩은 날개 끝부분에서 미세한 와류(소용돌이)를 만들어내 공기의 흐름을 강제로 꺾어버린다. 덕분에 직선주로 저항은 거의 늘리지 않으면서, 코너를 돌 때 필요한 다운포스만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효과를 냈다.
벨 222U 헬기에 사용 되는 더블 거니 플랩
이 기술은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효과가 확실하여, 50년이 지난 지금도 F1 경주차는 물론이고 포르쉐, 페라리 같은 초고성능 양산차의 스포일러, 심지어 헬기 프로펠러 날개에도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다.
영화 '포드 V 페라리'에서 켄 마일스가 포드의 거대한 관료주의와 싸우며 차를 완성해 나간 야생마 같은 존재였다면, 댄 거니는 그 뒤에서 묵묵히 본인의 피지컬 한계를 디자인으로 승화시키고(거니 버블),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자동차 공학을 발전시킨(거니 플랩) 또 한 명의 숨은 주역이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