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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인테리어] 시대의 이단아이자 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빛과 그림자
👤 파랄랄 5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걷다 보면 마주치는 거대하고 기괴하며, 동시에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있다. 바로 ‘신의 건축가’라 불리는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1926)의 작품들이다. 
평생을 자연의 곡선을 찬미하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가우디. 그러나 그의 화려한 건축물 뒤에는 지독할 정도로 고독하고 남루했던 한 인간의 삶이 숨겨져 있다.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과, 그 유산의 그늘에 가려진 비극적인 삶의 궤적을 추적했다.

1. ‘비단 양복’에서 ‘거지 같은 넝마’로… 그가 외모를 버린 이유

가우디의 젊은 시절은 우리가 아는 고독한 수도자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청년 시절의 그는 최고급 양복을 맞춰 입고, 미식과 오페라를 즐기며, 품격 있는 마차를 타고 다니던 전형적인 ‘댄디(Dandy, 멋쟁이 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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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이가 들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 성당 건설에 본격적으로 몰입하면서 그의 외모는 극적으로 변했다. 가우디는 옷을 고르고 외모를 가꾸는 시간조차 아까워하기 시작했다. 그는 몇 년 동안 같은 옷을 기워 입었고, 신발이 닳아 떨어지면 끈으로 묶어 고쳐 신었다. 머리와 수염은 정리하지 않아 늘 더수룩했으며, 주머니에는 늘 딱딱하게 굳은 빵 조각이 들어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청빈함을 추구하는 가톨릭 신앙심의 깊어짐과, 오직 건축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만 모든 정신과 에너지를 쏟아붓겠다는 광기 어린 집념 때문이었다. 그에게 옷이란 그저 몸을 가리는 천 조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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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극적 종말: 부랑자로 오인받아 맞이한 죽음

1926년 6월 7일, 평소처럼 성가족 성당에서 일을 마치고 산책 겸 미사를 드리기 위해 걸어가던 73세의 노인이 전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인은 머리를 심하게 다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당시 그가 입고 있던 옷은 다 헤어진 낡은 코트에 붕대로 고정한 신발, 주머니에 든 몇 개의 빵 조각과 성경책이 전부였다. 지갑이나 신분증은 없었다. 행인들과 택시 운전사들은 그를 부랑자나 노숙자로 판단하여 병원 이송을 거부하거나 기피했다. 몇 번의 승차 거부 끝에 겨우 경찰에 의해 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곳은 행색이 초라한 빈민들을 주로 치료하던 산타 크루즈 병원(Hospital de la Santa Creu)이었다.
신원 미상의 노숙자로 분류된 그는 제대로 된 집중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이튿날 성가족 성당의 사제가 사라진 가우디를 찾기 위해 병원을 수소문하다가 겨우 그를 발견했다. 주위 사람들이 더 좋은 병원으로 옮기자고 권유했으나, 가우디는 "내 자리는 이곳이다. 가난한 이들 곁에서 죽겠다"라며 거부했다.
결국 사고 발생 사흘 뒤인 6월 10일, 가우디는 숨을 거두었다. 부랑자 같은 차림새로 인해 초기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그의 명을 재촉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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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집불통 천재의 고독, 그리고 반전의 따뜻함

가우디의 성격은 한마디로 '불같고 타협 없는 완벽주의자'였다. 카탈루냐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해 스페인 국왕이 방문했을 때도 스페인어(카스티야어) 대신 카탈루냐어만 고집해 주변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건축 현장에서는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인부들에게 호통을 치며 결과물을 부수고 다시 짓게 만드는 까다로운 감독관이었다.
성격이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무뚝뚝해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친구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마냥 친근한 성격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반전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부리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복지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성가족 성당을 지을 당시, 인부들의 자녀가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당 부지 안에 '성가족 성당 학교'를 직접 설계해 무료로 운영했다. 현장 인부들이 다치면 사비로 치료비를 대주기도 했다. 겉은 차갑고 뾰족했으나 속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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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대를 초월한 가우디의 대표 건축물과 디자인의 비밀

가우디 건축의 핵심 명제는 하나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그는 자연에는 완벽한 직선이 없다고 믿었으며, 나무, 파도, 동물의 뼈, 곤충의 집 등 자연의 형태를 건축에 그대로 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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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
가우디의 모든 예술 혼이 집약된 미완의 걸작이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거대한 석조 기둥들이 천장을 향해 뻗어 있는데, 이는 거대한 숲의 나무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나뭇가지처럼 갈라지는 기둥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마치 햇살이 가득 내리쬐는 숲속에 있는 듯한 신비로움을 준다. 구조적으로도 아치와 곡선을 활용해 기둥이 받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천재적인 역학 계산이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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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구엘 공원
후원자 에우세비 구엘 백작과 함께 기획한 전원 도시 프로젝트였으나 분양 실패로 공원이 되었다. 이곳의 벤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벤치로 유명한데, 인체의 척추 곡선에 맞추어 유기적인 곡선으로 디자인되었다. 가우디는 인부들을 직접 벤치에 앉혀 편안한 각도를 측정한 뒤 타일 조각을 붙여 완성했다. 깨진 도자기와 타일 조각을 재활용해 모자이크하는 '트렌카디스(Trencadís)' 기법이 정점을 이룬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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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카사 밀라 & 카사 바트요
 * **카사 밀라:** 건물의 외관이 거대한 암벽을 깎아 만든 것 같아 현지인들은 '라 페드레라(채석장)'라고 불렀다. 파도가 출렁이는 듯한 곡선의 외벽과 몬세라트 산의 바위산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굴뚝들이 특징이다.
 * **카사 바트요:** '뼈로 만든 집'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기둥들이 동물의 다리뼈를 닮았다. 외벽은 바다의 표면을 형상화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며, 지붕은 용의 비늘 같은 타일로 덮여 있어 마치 카탈루냐의 수호성인 성 조르디가 용을 무찌른 전설을 시각화한 듯한 형상을 띠고 있다.

가우디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기에 당대에는 '괴짜', '이단아'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신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지어 올린 그의 곡선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선사하고 있다. 넝마를 걸친 채 거리에 쓰러졌던 노인은, 그렇게 바르셀로나라는 도시 자체를 자신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만들며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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