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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과학의 경계] 찰나의 순간을 해부하는 미학, 파비안 외프너의 실험실
인간의 눈은 초당 수십, 수백 번 움직이는 세상의 변화를 모두 담지 못한다. 우리는 소리를 볼 수 없고, 물방울이 튀는 미세한 작용을 인지하지 못하며, 자동차가 폭발하는 순간의 부품 하나하나를 분리해 보지 못한다.
스위스 출신의 예술가이자 사진작가인 파비안 외프너(Fabian Oefner)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의 작업실은 아틀리에라기보다는 정밀한 과학 실험실에 가깝다. 주사기, 자석, 원심분리기, 소리 센서와 온갖 화학 물질이 그의 붓과 물감이다.
그는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자연의 힘을 작동시킨 뒤, 가장 완벽한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로 얼려버린다.
그가 왜 이런 복잡하고 정교한 이미지를 만드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추적했다.
1.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법칙을 시각화하다
외프너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철저히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는 과학과 예술이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언어일 뿐, 본질은 같다고 믿는다. 초기 그의 명성을 알린 작품들은 주로 소리, 원심력, 자성 같은 물리적 현상을 시각화하는 작업이었다.
가종 대표적인 것이 '춤추는 색(Dancing Colors)' 시리즈다. 그는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했다. 스피커 위에 얇은 알루미늄 판을 얹고 그 위에 수백 개의 유색 결정체를 뿌린 뒤 음향 신호를 보냈다. 소리의 진동이 판을 때리는 순간 크리스탈들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고, 외프너는 고속 촬영 기술을 이용해 음파가 가진 물리적 형태를 공간 속에 고정시켰다.
원심분리기를 돌려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물감의 궤적을 잡은 '움직이는 물감(Liquid Jewel)'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는 액체가 움직이는 그 짧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을 고속 사진으로 재해석해냈다.
2. '세상에서 가장 느린 고속 사진', 디스인테그레이팅
외프너의 커리어에서 가장 정점을 찍은 프로젝트는 단연 '디스인테그레이팅(Disintegrating, 해체)' 시리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포드 GT40, 메르세데스-벤츠 300 SLR 같은 전설적인 클래식 스포츠카들이 공중에서 수천 개의 부품으로 폭발하며 사방으로 비산하는 듯한 충격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이 이미지를 처음 본 사람들은 3D 그래픽(CG) 렌더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100% 실제 사진을 조합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사진들은 폭발의 순간을 찍은 고속 사진이 아니라, 수개월에 걸쳐 완성된 '가장 느린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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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프너의 디스인테그레이팅 작업 프로세스]
정밀 다이캐스트 모델카 분해 (엔진 피스톤부터 미세 나사까지 전부 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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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가느다란 실, 아크릴 고정대를 이용해 각 부품을 공중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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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품의 각도와 위치를 세밀하게 조정하며 수천 번의 개별 컷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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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샵을 이용해 수천 장의 레이어를 한 장으로 합성 및 고정 뼈대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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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한 적 없는 가상의 폭발 순간'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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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프너는 이 작업을 위해 정밀 모델카를 나사 하나까지 완전히 분해한 뒤, 바늘과 실을 이용해 부품 하나하나를 공중에 매달아 두고 각기 다른 각도에서 수천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포토샵을 통해 고정 장치들을 지우고 하나의 거대한 폭발 장면으로 합성했다. 작품 한 점을 만드는 데 최소 2달 이상의 시간과 2,000번이 넘는 셔터 클릭이 필요했다.
3. 현실과 허구, 시간의 개념을 흔들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이런 엄청난 노고를 들여 존재하지 않는 순간을 만들어낼까? 외프너는 이를 통해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과 시간의 불완전성'을 꼬집는다.
그의 작품 '해치(Hatch)' 시리즈는 자동차가 알을 깨고 나오는 듯한 유기적인 탄생을 다룬다. 모델카 위에 석고로 만든 껍데기를 떨어뜨려 깨지는 순간을 소리 감지 센서와 카메라를 동기화해 포착했다. 수백 번의 실패 끝에 얻어낸 이 찰나는 현실에 분명 '존재했던' 시간이다.
반면 '디스인테그레이팅' 시리즈의 폭발 장면은 현실에 단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이다. 부품들은 단 한 번도 동시에 공중에 저런 모양으로 떠 있은 적이 없다. 오직 작가의 치밀한 계산과 시간의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인공적인 찰나'일 뿐이다.
외프너는 진짜처럼 보이는 완벽한 허구를 제시함으로써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 눈으로 보고 믿는 그 '진짜 순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총평: 이성을 자극하고 감성을 흔드는 예술
파비안 외프너의 예술은 차가운 과학적 메커니즘과 뜨거운 시각적 아름다움이 정교하게 맞물린 결과물이다. 물리 법칙이라는 이성적인 틀을 사용하지만, 그 틀 안에서 튀어 오르는 우연의 결과물들은 지극히 감상적이고 아름답다.
그의 작품 앞에서 관객은 압도적인 디테일에 뇌를 자극받고, 그 안에 담긴 우주적인 색채와 역동성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의 실험실이 계속 가동되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찰나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