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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메시지 한 통 때문에 25명이 즉사한 '채츠워스 열차 참사'에서 일어난 미스테리한 사건
2008년 9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채츠워스(Chatsworth)에서 일어난 '메트로링크(Metrolink) 열차 참사'입니다.
이 사고는 미국 철도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황당한 인재(人災)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날의 소름 돋는 전말을 풀어봅니다.
2008년 9월 12일 금요일 오후 4시 22분경.
불금의 퇴근길이라 평소보다 많은 222명의 승객을 태운 통근열차 '메트로링크 111호'가 역을 출발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해당 구간은 선로가 하나뿐인 '단선 구간'이었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오던 대형 화물열차와 충돌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대기선에 멈춰 서서 적신호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철도 관제소는 맞은편 유니온 퍼시픽 소속의 거대한 화물열차에게 먼저 지나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메트로링크 통근열차 앞에는 명확하게 빨간색(정지) 신호가 켜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메트로링크 열차의 기관사 '로버트 산체스'는 정지 신호를 완전히 무시한 채, 시속 64km의 속도로 단선 선로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시각, 맞은편에서 오던 화물열차 기관사는 굽은 선로를 돌자마자 눈앞으로 정면 돌진해오는 통근열차를 발견하고 경악했습니다.
급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습니다. 수천 톤짜리 열차 두 대는 아무런 제동도 없이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정면충돌하고 맙니다.
"쾅-----!!!"
충돌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통근열차의 무거운 기관차가 기관차 바로 뒤에 있던 1번 객차의 앞부분을 무려 15미터나 파고 들어가며 찢어버렸습니다. 1번 객차에 타고 있던 퇴근길 승객들은 대피할 시간조차 없이 현장에서 그대로 짓눌렸습니다.
이 사고로 기관사 산체스를 포함해 25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130명이 넘는 승객이 사지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은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지옥 그 자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사고 직후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가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기계 결함도 없었고, 신호등도 정상 작동 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기관사는 도대체 왜 눈앞의 새빨간 정지 신호를 보지 못하고 돌진했을까요?
조사 결과 밝혀진 진실은 미국 전역을 분노와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습니다.
기관사 산체스의 휴대폰 기록을 조회해 보니, 그가 열차를 운행하는 동안 무려 45통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심지어 충돌하기 불과 22초 전에도 "다음 역에서 만나서 같이 저녁 먹자"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 화면을 보느라, 눈앞에 켜진 정지 신호등도, 맞은편에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오던 거대한 화물열차도 전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참사를 계기로 미국 정부는 열차 운전실 내에서 기관사의 개인 휴대폰 사용을 법적으로 전면 금지(발각 시 즉각 해고)했습니다.
또한, 기관사가 실수로 신호를 위반하더라도 AI와 컴퓨터 시스템이 강제로 열차를 멈춰 세우는 '열차 자동 제어 시스템(PTC)'의 도입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 안에서 살펴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요.
바로 채츠워스 열차 참사 피해자중 한 명인 "찰스 펙"의 이야기입니다.
찰스 펙의 이야기는 기술적 미스터리와 연관된 현실에서 경험하기 드문 실화 중 하나이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휴대전화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완벽한 설명은 없습니다.
메트로링크 통근열차의 승객 중 한명이었던 솔트레이크시티 출신의 델타항공 직원인 49세 찰스 펙은 약혼녀 안드레아 카츠와 결혼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계획이었고, 그곳에서 면접을 보기 위해 열차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면접장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충돌 사고 후, 가족들은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안드레아 카츠는 무어파크 역에서 펙을 데리러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찰스였는데, 전화를 받으니 잡음만 들렸습니다. 목소리도,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정적과 지직거리는 소리뿐이었습니다. 그 후로 전화가 계속 걸려왔습니다. 안드레아에게만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11시간 동안 찰스 펙의 휴대전화는 아들, 형제, 누나, 계모, 약혼녀에게 약 35통의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전화를 받을 때마다 잡음만 들렸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통화가 끊겼습니다. 음성 메시지는 남겨지지 않았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가족들은 당연한 현상을 믿었습니다. 찰스가 잔해 아래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이는 비합리적인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고, 구조대원들은 사고 후 몇 시간 동안이나 뒤틀린 열차 잔해 속에서 희생자들을 구조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생존자들은 잔해 아래에 깔려 있기도 했습니다. 반복되는 전화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안드레아 카츠는 전화 통화 중 "힘내, 자기야. 우리가 널 구해낼 거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전화들은 무작위 스팸이나 모르는 사람의 잘못 걸린 전화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펙과 가까운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밤새도록 반복적으로 걸려온 전화 같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조 작업은 점차 생존자 구조에서 시신 수습으로 전환되었지만, 펙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수색대는 휴대전화 신호를 이용해 잔해 속에서 그의 위치를 좁혀나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추락 사고 발생 약 11시간 후인 새벽 4시경, 구조대원들은 잔해 속에 깊숙이 묻혀 있던 찰스 펙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가족들의 증언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시관은 그가 충돌 직후 즉사했거나 거의 즉사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는 그가 밤중에 의식적으로 전화를 걸 수 없었음을 의미했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의 시신이 발견되기 직전에 전화가 끊겼다는 점입니다. 이 시점은 사건에서 가장 섬뜩한 단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가장 반복해서 언급되는 동시에 미스터리한 점 중 하나는, 그의 휴대전화에서 수많은 통화 기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휴대전화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휴대전화가 없었기에 수사관들은 기술적 분석을 할 수 없었고, 실제 단말기의 통화 기록을 확인할 수도 없었으며, 손상 정도를 평가할 수도 없었고, 사망한 사람의 휴대전화에서 어떻게 통화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휴대전화의 부재는 새로운 미스터리를 낳았습니다. 만약 찰스가 살아 있었다 하더라도, 휴대전화조차 없었다면 어떻게 통화를 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휴대전화가 심하게 파손된 상태로 발견되었다면, 수사관들은 반복적인 통화가 버튼 고장, 합선, 반복적인 재다이얼, 습기, 전도, 또는 하드웨어 오작동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없었기에, 이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한 남자가 사망하고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후에도 어떻게 11시간 동안 가족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는지 아무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처:네이버카페 (노래하는 코트카페)


